
공자가 살았던 시절에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이었다. 그 당시 사람들이 본 책은 죽간(竹簡)으로 되어 있었다. 죽간을 만들려면 우선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낸 다음 마디 사이의 부분을 세로로 쪼갠다. 이렇게 해서 된 대나무패를 불에 쬐어 푸른빛의 기름을 뺀다. 이것은 글씨를 쓰기 좋게 하기 위한 것으로 그 위에 철필로 글자를 새기게 된다. 이런 간(簡:대쪽)을 모아 소가죽 끈으로 묶어 편철한 것을 책(策) 또는 책(冊)이라고 불렀다.
죽간을 모방해서 만든 목간(木簡)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을 찰(札) 또는 첩(牒)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간첩(簡牒)은 견고한 책 모양새를 갖추긴 했으나 무거운데다 부피 또한 만만치 않아 대중적으로 사용하기에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종이의 발견은 「후한서(後漢書)」환관열전에 의하면 채륜(蔡倫)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기 105년으로 우리나라 고구려 태조왕(太祖王) 53년, 백제 기루왕(己婁王) 29년, 신라 파사왕(婆娑王) 26년에 해당된다.
당시 궁중의 집기 등을 제조·관리하는 상방령(尙方令)이란 직책이던 채륜은 나무껍질, 베옷 등을 합쳐 분쇄하여 종이를 값싸게 만드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그 종이를 「채후지(蔡侯紙)」라 불렀다. 환관(宦官)이면서도 용정후(龍亭侯)로 책봉되어 경(卿)의 지위까지 올랐으나 불행하게도 후일 정쟁에 말려들어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이다.
지난 1월 9일 백제 시대의 목간(木簡) 129점이 공개됐다. 요즘 택배표처럼 백제 때 물건을 배달하는 데 쓰인 꼬리표 목간이 한·일 간 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고, 특히 종이에 글씨를 쓰고 지우개로 지워 다시 쓰는 것처럼 글자가 적힌 나무 표면을 손칼로 긁어낸 후 그 위에 새 글자를 써서 재활용한 흔적까지 보인다.(san109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