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권도 종주국인 우리나라에서 ‘정통태권명가’라는 이름에 걸 맞는 체육관은 그리 많지 않다. 각종대회나 시범, 수련생 숫자로 정통이란 단어와 명가라는 단어를 붙이기에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제지역에는 전국 어떤 태권도 도장보다 오랜 역사와 전통과 관록을 자랑하는 체육관이 있다.
1957년, 아직 태권도라는 이름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오직 태권도의 올바른 정신과 수련만을 고집하며 정통 태권도 전수에 일생을 바친 김태진(80), 김덕용 (58) 거일 체육관 두 관장이 부자가 그 주인공이다.
김태진 총관장과 김덕용 관장, 또 김덕용 관장의 두 자녀가 보유한 유단은 국기원공인 25단이나 된다. 두 관장이 공인 8단, 김덕용 관장의 두 자녀가 각각 5단과 4단을 보유 하고 있다.

거제에서 8단은 두 관장이 유일하며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고단이다. 두 관장이 걸어온 태권도 인생은 ‘태권도에, 태권도에 의한, 태권도를 위한’ 길이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태권도의 산증인으로 살아있는 태권도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태진 1대 관장은 태권도의 기초를 확립 시켰던 故 최홍희 전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와 함께 이승만 대통령 앞에서 처음으로 태권도를 선보인 장본인이기도 했다. 그는 아직 태권도라는 이름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50년대, 거제고등학교와 거제중학교 체육교사를 지내면서 방과 후 제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 태권도 수련은 지붕은커녕 매트 하나 없는 맨바닥에서 미제 밀가루 포대를 기워 만든 도복을 입고 수련하는 등 지금과 비교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전수됐다. 그 당시 태권도 수련은 현재 다양한 형태로 변한 태권도와 달리, 심신수련에 중점을 둔 태권도 수련 이었다.

태권도 전수에 인생을 건 김태진 총관장의 열정은 아들인 김덕용 관장에게 체육관 바통을 넘긴 지금도 여전하다.
80세가 넘은 지금도 틈틈이 체육관을 방문하며 수련생들의 교육 모습을 참관하곤 한다. 김태진 총관장은 거제군태권도협회 초대회장과 거제시태권도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면서 오랫동안 거제지역의 태권도 발전에 힘써 온 것은 물론 현재는 경남태권도협회 고문으로 활동하며 경남태권도인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다.
김태진 총관장이 일선에서 물러 난 후 거제태권도 역사의 바통은 자연스레 김덕용 관장에게 대물림됐다. 김덕룡 관장은 밀양 무안중학교에서 3년간 체육교사로 지내다 1978년 고현중학교 체육교사로 부임하면서 본격적인 태권도 전수를 시작한다. 고현중학교에 태권도부를 창설하고 이듬해 태권도를 고현중학교의 교기로 까지 만들었다.

그 후 김덕용 관장은 1980년대 초반 부친에게 태권도장을 물려받는다. 지금은 체육관 운영으로 활동이 뜸하지만 그는 또 70년대 후반부터 태권도국제심판으로서 꾸준한 활동을 해왔다.
부친에 이어 거제시태권도협회 회장직을 비롯, 태권도 교육자로서 많은 감사패와 표창을 받았지만 김덕용 관장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명예가 있다.
태권도가 세계속으로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된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때 국제심판으로 활약한 경험이다.

당시 태권도 심판으로 선발된 요원은 20명. 지금도 그렇지만 전국에 수많은 지도자들 중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최초의 태권도국제심판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무나 누릴 수 있는 영광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이력에도 불구하고 거일 체육관의 수련생은 좀처럼 늘지 않는다. 오랜 역사와 화려한 경력과 태권도 전수의 노하우를 갖추고 있지만 학부모들은 젊고 활동적이고 현대적인 체육관을 원하기 때문이다. 가끔 인성교육을 위해 수련생에게 꾸지람이라도 하면 다음날 어김없이 태권도장을 그만둔다고 한다.
앞으로 김관장은 건강이 허락하는데 까지는 수련생이 적든 많든 체육관 운영을 할 생각이다. 또 그동안 그가 모아놓은 자료를 바탕으로 태권도 역사서를 편찬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김덕용 관장은 “체육관을 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만 둘 다 대를 이어갈 생각이 없는 것 같아 아쉽다. 오래 살아서 손자에게라도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며 아쉬워했다.
또 그는 “태권도 교육이 다양한 방법으로 변하는 것은 좋지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목적으로 남용 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