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웠던 기록행정(記錄行政)
아쉬웠던 기록행정(記錄行政)
  • 거제신문
  • 승인 200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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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배 칼럼위원

작년도에 경남도가 행정안전부 산하 국가기록원이 ‘기록문화의 확산 및 보급??에 기여한 유공기관에 대해 수여하는 정기 포상에서 지방자치단체부문 전국 최우수기관에 선정되어 지난 12월 대전 정부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제4회 기록관리 포럼에서 대통령 기관표창을 받았다고 한다.

평가는 기록관리 인프라 구축, 교육 및 지도감독, 심의절차 준수 등 5개 분야 10개 항목을 대상으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도는 현재 기록물의 안전한 보존과 열람을 위해 전산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90% 이상 진척되고 있어 금년이면 작업이 마무리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기록문화가 미약하여 역사기록조차 외국에서 입수하는 형편이고 특히 행정 면에서 기록관리가 아쉬웠던 지난날이 회상되어, 기록관리 최우수상을 수상한 경남도의 노고와 성과에 찬사를 보내면서, 앞으로 기록문화가 더욱 향상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날을 되짚어보려 한다. G군의 행정계장으로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법원으로부터 행정소송 사건의 판결에 참고하고자 현행 조례(條例)로 개정되기 이전의 조례 내용을 조회한다는 것이었다. 담당직원에게 자료를 찾아보라고 했더니 벌써 폐기처분(廢棄處分)되고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청(道廳)에 가면 있을 것이니 사본(寫本)이라도 만들어 오라고 담당직원을 출장 보냈다. 당시에는 도(道)가 시·군 의회의 권한을 대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례 승인의 자료나 조례의 준칙(準則·상부로부터 내려오는 조례의 안을 준칙이라고 했다)이 반드시 보관되어 있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기서도 헛걸음이었다.

결국 어찌어찌 하여 어느 면사무소의 폐지창고에서 어렵사리 자료를 구할 수가 있었다. 지방정부의 조례는 국가의 법률에 버금가는 것인데, 국가의 법령집은 새로운 법령과 개정되기 전의 법령을 별도로 보관하고 있었다. 그것을 행정용어로 법령가제집(法令加除集)이라 하여 영구히 보관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마저도 지방의 기관들에서는 잘 정리·보관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당시의 현실이다. 그 후에 경남도청으로 전근되어 법무(法務)를 담당하게 되었다. 도 본청의 조례와 소송은 직접 다루었고 시·군의 것은 감독과 승인을 하는 업무였다. 그런데 도청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현행 조례를 제하고는 이전의 조례들은 산지사방으로 서류가 흩어져 있었고, 소송서류는 진행 중의 자료들조차도 온통 따로따로 보관되어 있어서 한 건의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하루 종일을 서류창고에서 자료 찾는 일에만 허송세월을 했던 일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할 수 없이 흩어져 있는 서류를 다시 정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든 서류를 뒤져서 각기 필요한 서류의 소재라도 일목요연하게 찾아볼 수 있도록 사건별로 카드를 만들어서 업무의 신속을 기하고자 했다.

그러던 차에 당시의 도지사가 어떻게 착안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도청 행정서류 전반에 걸쳐 지속성이 있는 것은 모두 카드화하라는 지시가 필자가 속해 있는 계(係)에 떨어졌다. 소송 사건과 조례의 목록을 카드로 정리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도지사를 만족하게 했던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돈도 빽도 없는 신세에 군 과장으로 승진할 수가 있었다.

그 뒤에 H군에 군수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한 민원인(民願人)이 찾아와서 자기 할아버지의 묘에 비석을 세우려 하는데, 지난날에 할아버지가 군청에 기부금을 낸 일이 있다고 해서 그 사실을 비석에 공적으로 기록하려고 하니 기부한 사실을 증명해달라는 것이다.

군청에서는 그런 것을 기록으로 보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걸핏하면 외지의 향인(鄕人)들에게 가서 지역발전에 도움을 주십사 하고 손을 벌리던 시절인데, ‘×누러 갈 때 마음 다르고, ×누고 올 때 마음 다르다’ 더니 급할 때는 허리를 있는 대로 굽혀놓고는 기록·보관이라는 뒤처리는 소홀한 것이 아니라 아예 안 중에도 없었던 것이 당시 우리 행정기관의 타성이 아니었을까.

개인이나 단체나 사회는 물론 하나의 국가도 언제나 과거의 역사(歷史)를 배경으로하여 미래를 바라보면서 현재를 착실히 살아갈 때 그 앞날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 아닐까.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고 기록된 자료는 역사의 기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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