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화가 걸려왔다.
“윤○○씨 가족 되시죠. ○○병원인데요. 교통사고가 났으니 응급실로 빨리 오십시오.”
라고 짤막하게 말한 뒤에 물어볼 시간도 주지 않고 끊어버린다. 교통사고라니 눈앞이 캄캄해진다. 많이 다치지는 않았는지 어떻게 될 것인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온통 머릿속이 하얗게 정지된듯하다.
정신없이 찾아간 병원 응급실에는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지키고 서 있었다. 가해자인 듯한 사람도 있었다.
“선생님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물으니
“다행입니다. 환자의 의식이 차츰 돌아오고 있으니 좀 더 기다려봅시다.”한다.
사고는, 아침 산책을 갔다가 횡단보도를 건너오는데 가해 차량이 우측 범퍼로 뒷다리 부분을 쳐서 전방 도로 위에 넘어뜨린 것을 지나던 사람들이 보고 119에 신고를 하였다고 한다.
아내는 사고 당시 충격에 의한 정신적 쇼크와 무릎과 몸 외상으로 입원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은 심한 통증으로 옆에서 지켜보는 마음이 안타까웠는데 날이 갈수록 차츰 회복이 되고 있는 것이 다행이었다.
가해자는 젊은 사람이었다. 3주간 입원해 있는 동안에 병실에 한 번 찾아오고는 나타나지 않았다. 보험사에 미뤄버리는 것 같았다.
경찰서에서 사고 조사를 하면서 횡단보도 위의 사고는 안전운전 10개 항목을 위반한 중대한 과실로 합의가 되지 않으면 벌금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형사합의를 보는 것이 좋다고 일렀다고 한다.
나는 가해자에게 ‘합의를 보고 싶은 의향이 있으면 만나자’고 했으나 알겠다고 해놓고 그 후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뒤에 알고 보니 벌금도 변호사 선임비도 나오는 운전자 보험에 가입했다 한다. 보험은 예측할 수 없는 사고 발생시에 보상을 받기 위하여 금전을 담보하여 재산적 급여를 받는 제도다.
하지만 합의서가 들어가면 법원에서 벌금을 부과할 때에 합의금 이상의 정상참작을 하는데도, 부모 같은 사람을 차로 치어놓고 위로나 하등의 대책 없이 보험으로만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잘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분개하였다.
벌금이라도 많이 물도록 검찰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싶었다. 보행권이 보장되는 횡단보도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서 한 가정을 파멸로 몰아넣을 뻔한 일을 저지르고 반성이나 인정도 없는 몰염치한 사람이오니 법보다도 도덕의 잣대로 엄하게 처벌하여 달라고 했다.
탄원서를 써놓고 큰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벌금을 많이 부과시켜 달라는 탄원을 검찰에 내려고 하고 있다.”고 했더니
“아버지, 요즘 젊은 사람들 인정사정도 없고 무섭습니다. 그 사람의 행위에 대해서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 모두 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운전이라는 것은 언제 어느 곳에서 사고가 날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누구나 가해자도 될 수 있고 피해자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벌금은 모두 국고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탄원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라며 설득을 시킨다.
전화기를 놓고 한참 동안 생각을 했다. 아이 말대로 뺑소니차에 치었다면 치료비 부담도 우리가 했을 것이 아닌가. 교통사고 목격자를 찾는 현수막이 도로변에 달려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어 그 가족들의 애타는 심정을 헤아리며 지금 우리의 처지와 비교해본다.
오늘날 문명의 이기인 차량이 때론 인간을 가해하는 무서운 적으로 변하는 사고가 비일비재하는 현실 앞에서, 살아서 퇴원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을 해야겠다.
그러나 입장이 바꿔졌다면 젊은 그 사람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협박을 했을지가 무섭다. 양심이 있다면 지금이라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돌아가 죄송하다는 생각이라도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