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찍 일어나 풀을 끓여 안 청 방문을 바르고 작은방 틈 난데로 다 바르고 나니 10시였다. 오늘은 한글교실 가는 날이라 급하게 걸어 버스를 타고 고현수협 앞에 내려 시장에가 작은 조기와 건어를 사 우리교실에 가니 몇 사람이 와 있었다.
공부를 다 마치고 선생님 차를 타고 집에 왔다. 오늘 우리 호관 아비 선거라고 했는데 궁금해서 정현이 집에 전화를 하니 지금 개표 중이라 했다. 엄청 초조했다. 8시쯤 되서 당선되었다고 전화가 왔다. 너무 감격했다. 우리 성주조상님 덕택이라고 고맙다고 했다.
조금 있으니 우리 용진이에게 전화가 왔다. 우리아들 장하다고 했다. 나는 우리 아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8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것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할머니 일기의 한 부분이다.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면 이계순 할머니(84)는 거제자원봉사센터 2층에서 열리는 한글교실 등교 준비에 분주하다. 가까운 한글 교실이 장승포와 옥포에도 몇 있지만 할머니의 발걸음은 늘 고현동으로 향한다.
할머니는 “처음부터 정을 들여 놓은 곳이기도 하고 사촌동생도 같이 다니는데다 무엇보다 동무들과 선생님이 좋아서 우리 교실에 다닌다”라고 설명했다.
할머니는 3년 전 우연히 종친회모임에 참석 했다가 자원봉사센터 2층에서 한글교실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한글교실에 다니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글을 깨치고 있었지만 보다 정확하게 한글을 사용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운면 소동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지금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보영강습소 6년 과정을 마쳤지만 한글을 제대로 깨치지는 못했다. 할머니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은 일제강점기라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한글을 배척했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업은 일본어와 한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4학년 때 부터 졸업 할 때 까지 2년 동안 한글을 배운 덕에 어느 정도 한글을 깨쳤지만 당시 맞춤법이나 받침이 표준화 돼 있지 않았던 터라 할머니는 제대로 한글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매주 수요일 오후1시에 한글교실 수업이 시작되지만 할머니는 오전 10시면 두모동 자택에서 발걸음을 옮긴다. 할머니는 한글교실을 다니는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결석도 손에 꼽을 정도다.

더구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쓰고 있는 할머니의 일기장은 할머니의 보물 1호다. 지금은 일기를 따로 쓰고 있지만 한글교실에 다니기 전에는 가게부에 일기를 썼다고 한다.
60년 넘게 꾸준히 기록해온 가게부와 일기장은 책으로 발간하자는 며느리와 한글교실 선생님의 권유가 있을 정도로 그 당시 상황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한글교실에서 할머니를 가르치고 있는 서한숙(49) 선생님은 “할머니의 일기를 보면 인생의 철학을 배울 수 있다”며 “젊은이들에게 잃어버린 정서와 올바른 생활관을 배울 수 있어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할머니가 8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글 공부에 남다른 열정을 바치는 것은 첫째로 가족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이고 둘째는 한국 사람이 당연히 한글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보다 값지게 보내고 싶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머니는 “해가(목숨이) 지기 전에는 배움을 잃지 않겠다”며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누구보다 값지게 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 사람이기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기위해 한글을 배운다는 할머니의 한글공부는 각종 외래어와 인터넷 용어로 가득한 요즘 젊은이들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