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담는 그릇, 한국 박물관 100년의 의미
미래를 담는 그릇, 한국 박물관 100년의 의미
  • 거제신문
  • 승인 200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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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원 칼럼위원

올해는 우리 한국 박물관이 개관 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은 1909년 11월에 문을 연 창경궁의 제실박물관(어원박물관 ; 御苑博物館 혹은 李王家 博物館)이 그 시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인 1915년 12월 1일 조선 총독부박물관이 문을 열었고, 해방이 되던 194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총독부박물관을 인수하여 개관하였다.

그 후 100년 동안 우리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이제 약 600여개의 박물관(여기에는 미술관과 과학관, 동물원과 식물원 등을 포함한 것이다.)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거제박물관도 개관한지 벌써 20년 가까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2번째로 등록한 박물관이고 경남에서는 제일 먼저 등록한 박물관이 되었으며 2,000여점의 유물을 소장한 그런 박물관이 되었다.

사립박물관이라고는 하나 박물관을 만들 때부터 거제문화재단을 설립하여 부동산과 유물모두를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의지로 이일을 해왔고, 그 점을 인정하였음인지 정부에서 표창을 받았던 기억이 이 일에 대한 공식적인 격려였다. 돌이켜 보면 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던 세월동안 박물관의 유물을 모으는 일부터 운영해 나가는 모든 일이 너무 힘들어 포기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돈을 벌려고 했다면 결코 이 일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 본다면 가정을 가지고 부모를 모시면서 자녀들을 키우는 일에 돈이 안들 리가 없다.

그러나 돈을 몰라서 이 일을 시작했고, 지금은 돈과는 바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박물관은 그 나라와 민족의 역사와 문화 등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아카이브(archive)이다.

유물이나 전시품 한 점, 한 점에는 과거의 역사와 문화 등 사람과 자연에 관한 정보가 들어있다. 다만 짧은 식견으로 그것을 해득하지 못하는 한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신과 무관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마치 디스켓에 저장된 엄청난 정보가 그것을 모르는 사람에게는 플라스틱조각으로 만 보이듯이.

이렇게 본다면 박물관에는 엄청난 디스켓이 있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일주일 내내 10명이 찾지 않는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을 하는 이들은 그것이 취미이던 욕심이던 열정을 갖고 유물을 모으고 그리고 박물관을 만들었다.

그러나 손님이 외면하면 진열된 유물처럼 박물관도 함께 퇴락해간다. 유물이야 세월이 흘러도 그 가치야 변치 않으리라 보지만 박물관은 그 설립자들은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이런 돈 안 되는 일들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녀들이 이어 받으려 하지도 않는다.

사람과 그 일이 사라지면서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도 함께 사라진다. 민족문화나 국가의 정통성을 얘기하는 수 천 편의 논문이 있을 지라도 이를 실증적으로 보여줄 유물이 이미 천덕꾸러기가 되어 없어지고 난 후에는 그 논문은 공허한 글자의 나열에 불과하다. 아무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고, 인정받지 못하는 논문은 계속 연구하려고 하는 사람도 없어진다.

유물도 없어지고 그에 관한 글도 없어지면 그 문화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그 역사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지구상에 표랑하는 민족이 되고 구태여 국가를 지킬 필요도 사라진다. 독창적 문화와 독립된 국가를 지키고자 했던 피 흘린 항쟁의 의미도 없어진다.

우리는 자고새면 잘 살아야 한다는 말을 숱하게 듣는다. 그러나 왜 잘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담론들을 벌인 적이 얼마나 있던가? 너무 진부하여 말할 필요도 없다는 선입견이 오히려 그 질문을 막아버리고 삶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 성찰들을 외면하게 한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박물관이 이 시대의 국민과 정치인들을 계몽하는 기구여야 한다면 지나친 호기일까 아니면 이렇게 가치관이 혼미한 시대를 향한 절규일까!

한국 박물관 100주년의 의미가 다만 박물관인들 만의 잔치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한국의 박물관이 미래를 담는 그릇으로서의 존재의 필요성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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