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辱)
욕(辱)
  • 거제신문
  • 승인 200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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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에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욕쟁이 할머니의 콩나물 국밥집이 유명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께서 전주에 오셨다가 국밥이 드시고 싶다고 하니까 수행원이 가까이에 있는 욕쟁이 할머니집에 배달을 부탁하러 갔다.

「먹고 싶으면 와서 먹을 일이지 배달을 시킨다」고 욕만 듣고 돌아왔다. 그 말을 듣고 대통령이 직접 식당에 들렀더니 욕쟁이 할머니가 「니는 우찌 그리 박정희를 닮았냐? 옜다, 박정희 닮았으께 계란이나 하나 더 묵어라」했다는 믿기 어려운 실화가 있다.

대개 지방마다 욕쟁이 할머니 식당이 있기 마련이다. 욕을 들으면서도 찾아가는 것은 그 욕이 상소리거나 증오가 묻어 실려 있는 치욕스런 말로 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 말속에서 애정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들었던 일본말 「빠가야로」는 심한 욕설인줄 알았다. 바른 발음은 「ばかやろう(바카야로)」인데 「바보새끼」정도의 욕설에 불과하다. 특히 「바카(馬鹿)」는 말과 사슴을 뜻하므로 속뜻은 「말과 사슴도 구별하지 못하는 녀석」으로 일본에서는 대단히 수준 높은 욕설에 해당한다. 우리 같으면 「병신」「쪼다」「등신」「X새끼」「X발놈」 등등 희한한 욕이 다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일본은 그만큼 욕설이 없는 나라지만 우리의 욕설문화는 세계적 수준이다.

「KBS스페셜-10대, 욕에 중독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청소년들의 욕설에 관한 심층취재가 있었다. 놀랍게도 초등학생 200명 중 97%가 욕설을 한다고 답했고, 여고생 4명이 45분 동안 15종류의 욕설을 248번이나 하는 걸 보고 놀랄 따름이다.

며칠 전에는 가수 신해철씨가 모 대학교 새내기 대상 특강에서 강연 도중 욕설을 사용했다고 해서 비난을 받고 있고, 축구선수 이천수씨는 자기가 넣은 골을 노골로 처리한 부심에게 욕설행위인 「감자 세레머니」를 해서 징계처분을 받았다.

욕설이 도전적 의미와 더불어 카타르시스의 효과가 있다고는 하나 너무 욕설이 난무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 걱정스럽다. (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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