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마침 스산한 늦가을 바람이 거리에 떨어진 가로수 낙엽들을 우수수 휩쓸고 지나가는 배경이 힘겨움과 무안함에 기다리는 차들을 향해 손을 두어 번 휘젓고 사라져 가는 그 할머니의 뒷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풍경으로 느껴짐은 아무래도 사치스런 감상인 듯 죄송스럽다.
문득 생각을 바꾸어 본다. 저 할머니는 왜 아기도 없는 빈 유모차를 밀고 가는 것일까. 무슨 연유로 성치도 않은 몸으로 유모차까지 밀고 가야 하는 것일까. 빈 유모차에는 무엇이 담겼기에 저리도 힘겨워하는 것일까. 가는 세월은 무심하고도 무상하다더니 저 할머니, 평생 동안 업고 다니던 근심 덩어리인 자식들 짝 맞춰서 내보낸 뒤 그제서야 등짐을 내려놓았다고 한시름 놓는 듯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월이란 놈은 새파랗던 어머니의 등을 저렇게 여지없이 휘 꺾어 애골 등골 다 빠진 할머니로 만들어 놓고 그래도 모자라 고운 볼에도 깊은 주름골을 파놓고 사라져 갔는데. 아마도 고된 시집살이 와중에 짧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단칸방 시절, 그 사랑의 기억 조각들을 주섬주섬 주워 미운 세월과 함께 버무려 담아 실었을까….
유모차를 떠나 성인이 된 어제의 아기들은 할머니가 되어버린 어제의 어머니가 낡은 유모차에 새로이 태어난 손자들의 근심까지 담아 싣고 밤낮없이 밀고 다닌다는 걸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가끔씩은 배우자와 다투기 싫어서 몰래 모아둔 비상금으로 용돈이라도 보내 드리고는 있는 것일까.
한때 무슨 돈 쓸 일이 그리도 많아 갖은 핑계로든 손을 벌려야 했던, 심지어 엉터리 전보로 온 집안을 놀래키며 용돈을 타 쓰곤 했던 그 시절, 호랑이표 아버지 눈을 피해 어머니가 사립문 밖까지 따라나와 꼬깃한 쌈짓돈을 몰래 꺼내 손에 꼭 쥐어주며 다독거려 주던 기억들을 잊고 사는 것일까.
옷깃을 여미게 하는 늦가을 바람이 분다. 조금은 호사스런 유모차를 밀면서 혹은 그 안에서 방실 웃는 아이를 보면서, 어디선가 낡은 유모차를 힘겹게 밀고 있을 그 임의 모습도 가끔씩은 떠올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