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길을 열어주자 하는가 ①
누가 길을 열어주자 하는가 ①
  • 거제신문
  • 승인 200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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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규 칼럼위원

1592년 4월 부산포에 상륙함으로서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의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동래성을 지키던 우리장수 송상현 공에게 서찰을 보냈다.

자신들의 목적은 명(明)나라로의 진군에 있으므로 ‘전즉전의 부전즉가아도(戰측戰矣 不戰측假我道)’ 즉 싸우고 싶거든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나아게 길을 빌려(열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적의 간계를 꿰뚫어 본 송상현 공은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 즉 싸워서 죽기는 쉬우나 길을 열어주기는 어렵다는 단호하고 명쾌한 답장을 보내고 끝까지 싸워 장렬히 전사했다.

이처럼 어느 한 쪽이 동의하지 않으면 길은 결코 열릴 수 없는 법이다. 바꿔 말해 길은 두 지점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왕래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사전에 약속해야만 뚫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근래들어 몇몇 사람들이 이런 사리를 무시하고 소위 한일 해저터널 추진위원회까지 만들어 해저터널길 건설의 분위기를 형성해 가고 있다. 더구나 그들이 세운 계획속에는 우리 거제땅을 한국쪽 시발점으로 하는 안이 유력하다하니 이대로 좌시할 수 없고 그들이 소홀히 한 중요한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길’의 사전속 풀이에는 ①‘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땅위에 내어진 일정한 너비의 공간’도 있지만 ②시간이나 공간을 거치는 과정 ③어떤 일을 추구하는 방법이나 수단 ④지향해야 할 바나 도리의 의미도 있다. 이제 우리는 ①의 의미가 ②·③·④의 의미로 발전된 것에 유념해야 한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양쪽에 사는 사람들 서로가 상대를 존중하고 신뢰하지 않으면 길은 생겨날 수 없다. 둘 사이가 친밀한 친구나 이웃이 아니면 길의 존재이유가 없는 것이다. 섬나라 일본은 아직 우리의 진정한 이웃이 아니다.

저들이 일으킨 태평양전쟁(2차대전)이 끝나고 광복된지 6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도록 경제분야를 제외한 한일관계는 전혀 발전하지 못했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저들 일본인에게 책임이 있다. 저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적 과오에 대해 반성도 하지않고 책임도 지지 않으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과서 왜곡과 확산, 일제 강제 징용자들에 대한 조사와 배상문제, 정신대 위안부에 대한 사과와 보상, 원폭 피해자들의 치료와 보상, 약탈 문화재 반환, 재일 동포들에 대한 차별절폐 등이 그것이다.

또한 저들은 아직도 침략적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상대인 우리를 깔보고 있다. 움직일 수 없는 수많은 근거와 자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독도를 계속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있으며 동해를 일본해라 부르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일본의 수상과 각료 등 정치 지도자들은 예사로 대한민국에 대한 모독적 망언을 서슴치 않으며 중요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매년 어김없이 참배하고 있다. 마치 한국사람들의 인내심과 기억력을 시험하는 듯 하다. 그래서 한일간의 역사는 세월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힘으로 이웃나라를 36년간 강점하고 착취, 유린한 것도 모자라 피해자의 아픈 과거와 상처를 수시로 들쑤셔 대는 일본인들을 어찌 이웃이라 하겠는가. 다같은 2차대전의 전범 국가들이지만 독일과 일본이 근본적으로 다른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가해자가 반성할 때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은 가해자가 반성하지 않으면 역사는 진보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일본이 지난 역사를 반성하고 과거사에 대해 책임지고자 하는 자세가 되지않는 한 결코 친구나 이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이 진정한 이웃이 아니라면 없던 길을 뚫을 이유가 없다. 더구나 거대한 자금을 들여서 해저터널을 건설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래도 궂이 한일 해저터널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터널건설에 매달리기 전에 일본측의 반성과 태도변화를 촉구하는 추진위원회를 먼저 만드는 것이 순서다.

그 길만이 양국간의 우호와 평화를 보장하고 궁극적으로 터널건설도 이뤄내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궂은 역사의 청산과 함께 대등하고 진정한 관계가 회복된다면 한일해저터널 보다 더한 일이라도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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