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寒食)
한식(寒食)
  • 거제신문
  • 승인 200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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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력 4월5일·6일이 청명(淸明)이고 그 안팎으로 한식이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청명에 죽으나 한식에 죽으나」하는 말이 생겨났다.

그러나 6년에 한 번씩은 겹치기도 하는데 이는 한식이 동지(冬至)를 기준으로 105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음력 3월 초열흘에 드물게 볼 수 있는 청명·한식이 겹치는 해다. 한식날에는 조상의 묘를 손봐도 동티가 나지 않는다고 해서 떼도 다시 입히는 작업을 하게 된다.

이를 「개사초(改莎草)」라 한다. 그러나 음력 2월 한식에는 사초(莎草:잔디를 입히는 일)를 하지만 음력 3월 한식에는 사초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이는 우리 옛 선조들이 「삼구부동총(三九不動塚)」이라 해서 3월과 9월에는 묘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믿음에서 연유한다.

요즘은 한식이 있으나 마나지만 조선시대에는 설날·단오·추석과 함께 4대 명절에 들만큼 민속적 권위가 대단한 절기였다. 국가에서는 관리들에게 공가(公暇)를 주어 성묘와 절사(節祀)에도 참석토록 했다.

내병조(內兵曺)에서는 청명에 새 불을 피워 불씨를 임금께 바치면 임금은 그 불을 홰에 붙여 각 관아와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고을 수령은 한식날 백성에게 나누어 준다. 새 불을 만들면 반드시 묵은 불은 꺼야하는 습속에 따라 한식에는 불을 쓰지 못하고 찬음식을 먹게 된다.

여기에는 개자추(介子推)의 전설과 맞물린다. 중국 춘추시대 진나라 문공(文公)이 자기가 유랑할 때 도와준 충신들을 포상하게 되는데 과거 문공이 굶주렸을 때 자기 넓적다리 살을 베어서 바쳤던 충신 개자추가 포상에 들지 못하자 이를 부끄럽게 여기고 산에 숨어버렸다.

문공이 늦게야 그를 찾았으나 산에서 나오지 않으므로 불을 질러 나오게 하려 했지만 끝내 나오지 않고 홀어머니와 함께 타 죽었다. 이를 애도하는 뜻에서 이날은 불을 쓰지 않고 찬 음식을 먹는 풍속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기실은 청명·한식 때 바람이 특히 심해 불나기 쉬우므로 하루 쯤 불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불조심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는지도 모른다.       (san10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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