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길을 열어주자 하는가 ②
누가 길을 열어주자 하는가 ②
  • 거제신문
  • 승인 2009.04.0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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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규 칼럼위원

일본이 진실로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한다면 그때는 이미 한일간에 해저터널 길보다 더 큰 대로가 놓인 것이다. 일본측이 마음먹기에 따라 현해탄 보다 넓고 깊게 패인 양국간의 역사적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만들어 질 수도 있다.

그동안 일본인들이 한국사람을 얕보고 머리를 숙이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와 계기가 없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한마디로 꿀리고 들어가갸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일해저 터널길을 열기 위해서는 저들의 사과와 태도변화가 선행되지 않으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어야 한다. 저들과 반대로 우리에게는 저들의 잘못된 태도와 버릇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므로 잘 활용하자는 것이다.

길을 내는 문제는 먼저 진정한 친구나 이웃이 되고난 뒤에 거론해도 늦지 않다. 그래서 이 한일간의 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다. 정치적 미봉책이나 경제적 이익만으로는 풀 수 없는 역사적이고 정신적 문제인 것이다. 이 일이 결코 배금주의적 경제논리나 다른 명분에 함몰되어서는 안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면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은 이미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한 상태에서 해저터널 길을 열어준다는 것은 또다시 역사적 실패를 되풀이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가 남북통일을 이루는데 희생과 비용을 치를 각오를 하고있는 만큼 일본도 오랜 숙원인 대륙으로의 길이 열리는데 따른 각오와 결심이 있어야 한다.

그 첫 번째 일이 역사의 찌꺼기를 제거하고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를 거쳐 유라시아 대륙과의 물적자원과 인적교류가 원활해진다는 것은 길을 열어주는 우리 보다 길이 연결되는 일본측에 더 큰 이익이 생길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경제지리적으로 한 차원 높아진다는 점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뱃길이나 하늘길과 뭍길(육로)의 차이는 크다. 섬의 독립성과 청정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언제든지 육지와 연결되는 편리성을 함께 갖게 되는 것은 단순히 길이 열리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것을 우리 거제사람들은 이미 경험하여 알고 있다. 한일해저터널 길이 열리면 일본은 섬나라에서 탈출하는 것이다. 그런 길인만큼 길을 열어주는 댓가로 정신적 가치회복과 역사적 자존심 복원이 선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우리 거제는 항일승첩의 땅이다. 왜구의 침탈이 가장 심했던 역사를 지닌 거제사람들의 대일감정은 그래서 유별날 수 밖에 없다.

이제 거제사람들에게는 우리민족과 역사앞에 쓸개(膽)의 역할을 톡톡히 해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 한일해저터널 길을 열어주는 것이 역사의 오욕을 일거에 청산할 지렛대로 활용되지 않는 한 결코 물러서서는 안된다.

그만한 명분없이 내고향 거제땅을 왜인들의 게다짝이 가장 먼저 올라서는 곳이 되게 할 수는 없다. 누가 길을 열어주자 하는가. 진정 누구를 위해서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가.

만약 우리가 한일간의 새 길을 열어주면서 역사청산의 책무를 소홀히 한다면, 후세 사람들의 준엄한 평가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그 어떤 이유와 명분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 깊이 흐르고 있는 한맺힌 염원을 넘어 설 수는 없다.

옛 선현들이 매화가 피기도 전에 즐겨그렸던 매화도에는 ‘一生寒不賣香(일생한불매향)’이라는 화제(畵題)를 자주 썼다. 일생이 추워도(가난해도) 향(지조)을 팔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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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시민 2009-04-30 12:48:46
역사의 정립을 바로해야 한다는 말에는 이의가 있을수 없겠지만, 그 방법적인면에서 우리 스스로가 국력이 약하다면, 아무짝에 쓸모없지요, 선비와 상놈이 존재했던 사회에서나마 지식인이었던 선비가 고매한 매향향기를 풍길 수 있어던 것이지요, 님의 이야기에서 민족적 정신은 강하나, 실사구시적 측면에서 왜 그런 수모를 당했는가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힘의 논리"도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