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바람이 푸른 해원을 넘어들 때 쯤 숭덕초등학교(교장 김용권) 화도분교에도 봄이 찾아온다. 문화시설이라곤 노인정과 보건진료소가 고작인 섬마을. 90여 가구에 200여명이 살고 있는 작지 않은 섬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 대부분이 도시로 떠나고 노년층이 대다수에 아이는 달랑 한 명뿐이다. 이 아이가 화도분교의 유일한 학생 서동건(11.4학년)군.

올해부터 이동식(38) 교사가 부임해 오면서 동건이의 유일한 짝꿍이자 선생님이 됐지만 진정한 짝꿍이 되기에는 아직 역부족. 그래도 지난 한 달동안 1년 넘게 같이 지내온 것처럼 두 사람은 무척이나 친해 보인다.
이 교사는 “동건이는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국어성적이 좋은 편이다. 학생과 선생이 한 명뿐인 수업이 단점도 있겠지만 장점도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이 교사는 요즘 동건이에게 로봇조립을 지도하고 있다. 단순 지식의 전달보다 다른 학교에서 쉽게 할 수 없는 로봇조립 등을 통해 동건이의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학습 목표다.

선생님과 학생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이어지면 어디에 있든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동건이도 어쩔 수 없는 아이다. 이 섬마을 아이는 선생님과 함께하는 로봇조립 보다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고 닌텐도 게임을 하는 것이 더 즐겁단다.
지난달 30일. 동건이가 왠지 들떠 보였다. 이날은 동건이가 월요일과 수요일 일주일에 두 번 본교로 통합수업을 받으러 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날 4교시는 동건이가 제일 좋아하는 체육수업이 있는 날. 체육수업도 그렇지만 친구들과 함께 할 기회가 없는 동건이에게 이날은 기대 될 수밖에 없는 날이다.
지난해 2학기부터 동건이는 혼자가 됐다. 전교생 4명중 3명이 집안사정 등의 이유로 전학을 가는 바람에 어쩔수 없이 혼자가 됐지만 동건이는 항상 밝은 얼굴로 등교를 한다.
한 선생님, 한 학생은 집중적인 학습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단체생활이 적기 때문에 사회적응력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김용권 숭덕초등학교 교장은 지난해 2학기부터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본교 학생들과 동건이가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통합 수업을 실시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붙임성 좋은 동건이는 한 학기동안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통합수업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동건이는 “통합수업 날이면 아침일찍 일어나 배를 타야 하기 때문에 조금 힘들지만 본교에 가면 한강이 승현이 태현이랑 닌텐도도 하고 축구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동건이의 꿈은 축구선수다. 박지성을 좋아하지만 같이 뛰어줄 친구가 없어 늘 선생님과 함께 산책을 하거나 할머니가 일터로부터 돌아오기를 기다며 시간을 보낸다.

1960년 개교한 화도분교는 60-70년대만 해도 전교생이 90-100명이나 됐다. 칠판에 ‘떠든 사람’ 명단이 가득했던 시절은 전설처럼 남아 있다. 60년대 이 학교에 다닌 화도마을 박영찬 이장은 “우리가 학교 다닐때만 해도 한 반에 20명이 넘고 전교생은 100명 가까이 됐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하지만 내년이면 동건이도 이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동건이는 하루 빨리 육지에 있는 부모님과 함께 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지만 동건이가 나가면 학교는 영원히 문은 닫을 수 밖에 없다.
거제교육청은 취학아동이 있을 경우 폐교결정이 유보된다는 단서를 붙이기는 했지만 동건이가 졸업을 할 때까지는 학교를 유지하기로 했다.

동건이는 다른 아이들처럼 컴퓨터 게임도 하고 같이 축구시합도 마음껏 하는 것이 꿈이다. 더구나 한참 군것질을 좋아 할 나이에 구멍가게 하나 없는 화도에서의 생활은 동건이가 육지로 나가고 싶어하는 단순한 이유 중 하나다.
올 경남도내에서 신입생이 없어 입학식을 못치른 초등학교가 17개. 특히 화도분교와 통영 원량초등교 노대분교처럼 학생수가 1명인 나홀로 학교도 2곳이나 된다.
보통 초등학교를 단순히 초등교육을 받기위한 교육시설 정도로 여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초등학교는 그곳을 졸업한 수많은 졸업생들과 주민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언젠가 동건이도 섬을 떠나고 화도분교도 문을 닫겠지만 오랜시간 섬 주민들과 함께 했던 추억이 사라지고 농어촌의 초등학생들이 점점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결국
IMF의 장벽을 버티지 못하고 그해 내가 다닌 그 초등학교는 나의 추억과 함께 사라져 버렸다.
학교가 문을 닫는다는건 그곳에 거미줄이 쳐지고, 풀들이 자라나는것이 아닌 추억이 고스란이 묻혀 버리는 것이라 이글이 더 아쉬워 보인다.
어쩔수없이 받아 들여야 하기에 더 씁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