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산의 곤돌라
미륵산의 곤돌라
  • 거제신문
  • 승인 200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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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길 거제수필문학회 회원

“미륵산에 운해가 꽉 끼이고 물아래가 컴컴한 것을 보니 오늘 비가 오것다. 야들아! 비설거지하거라.”

할머니는 신기하게도 우기를 알아맞혔다. 얼마 안 가 호박잎에 굵은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미륵산은 우리 집 기상관측소였다.

겨울이 다가올라치면 미륵산 정상에 먹구름이 바쁘게 지나간 다음 날은 영락없이 추위가 밀고 왔다. 그럴 때면 너나없이 겨울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 우리들의 기상관측소에다가 곤돌라를 놓는단다, 좋아해야 될지, 아쉬워해야 할지…….

언 보리밭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연을 날리다가 쓰윽 서쪽 하늘을 바라다 볼 때면, 미륵산은 막 붉은 노을을 토해내고 있었다. 그 황홀함에 잠시 돌리던 얼레를 멈춰 잡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한 소년, 그 소년이 상상하던 미지의 세계가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았던 산, 미륵산은 어린 시절 나에게는 신비의 산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마음이 울적한 날 미륵산을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달마대사의 왕방울 같은 눈을 껌벅이며 나의 마음을 알겠다는 듯이 위로의 미소를 보내왔다. 그런 미륵산에 곤돌라가 놓인단다. 숱한 사람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서 말이다.

이처럼 미륵산은 우리들에게 많은 추억을 간직하게 했다.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더 많은 추억을 보듬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산 정수리에 기어이 혹 덩어리가 붙었다. 회색정거장으로 쇠줄을 걸고 곤돌라가 올라갈 것이다. 미륵산은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안타깝게도 그것을 우리는 끝내 막아주지 못했다.

이젠 내가 위로받기 위해 자기를 바라봐도 눈을 껌벅여 주지도 않는다. 그 곱게 뿜어주던 노을마저도 왠지 예전 같지가 않다. 개발하면 뭐든지 돈이 된다는 괴상한 공식 앞에 사람들은 현혹되고 있다.

자연이 주는 무한의 가치는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유년의 꿈까지도 말이다. 그래도 많은 산 애호가들은 한발 한발 힘들게 미륵산을 오를 것이다. 나도 그들처럼 산을 오를지언정 그 곤돌라만은 타지 못할 것이다. 아마 영원히 타지 못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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