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이발소, 50년 외길 인생
추억의 이발소, 50년 외길 인생
  • 최대윤 기자
  • 승인 2009.0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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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이발 - 이용사 김홍오씨

수양천 따라 차를 타고 길을 지나가던 중 농로 옆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이발소가 눈에 보였다.

요즘에는 여기저기 미용실이 들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이발소는 보기 힘든 곳이다. 진한 스킨로션 냄새와 이발사 아저씨가 손님의 얼굴에 거품을 바르고 면도를 하는 모습은 추억 속에 머무는 장면이다.

수양천 옆 골목 한 귀퉁이에 빨간·파란·흰색의 이발소 표시등이 빙빙 돌아가고 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허름한 문에 자칫 잘못 읽으면 ‘발이양수’로 읽는다. ‘수양이발’ 간판에는 그 흔한 전화번호조차 적혀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이발소는 40년 가까이 되는 세월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이곳에 터줏대감은 김홍오씨(69)다. 알루미늄 섀시 문을 열고 들어서니 갑자기 30년을 ‘훌~쩍’ 뛰어 넘은 느낌이다. 오래된 석유난로에 오래된 의자, 빛바랜 이용사 자격증까지 영화에서나 보던 70년대 이발소의 풍경 그대로다. 서너평 남짓한 이발소 가득 추억이 넘실거린다.

오래 전 키 작은 꼬마가 널빤지 위에 올라않아 얌전히 이발을 했을 것 같은 낡은 의자에 앉았다. 그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이발을 시작했다. 도구는 달랑 가위와 빗 두 개가 전부다. 50년 경력의 주름진 손이 현란하게 움직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20여분 만에 이발이 끝난다.

이제는 면도를 할 차례. 의자를 눕힌 뒤 비누로 하얀 거품을 내고 붓에 묻혀 턱과 이마에 쓱쓱 바른다. 눈썹과 귀 언저리까지 꼼꼼하게 묻혀진다. 이발소 가격표에는 분명 이발가격이 명시돼 있지만 그는 정해진 가격대로 이용요금을 받지 않는다.

그는 “이용협회에서 정해진 가격대로 받지 않는다고 말들이 많지만 지갑 사정만큼 받고 있다”며 “찾아오는 것만으로 고마울 정도로 요즘에는 손님이 없어서 손님들이 주는 가격에 맞춰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60년대 초 부산에서 이발 기술을 배웠다.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는 직업 중 하나지만  60년대 이발사는 인기직업이었다.

한 때 건설회사의 전속 이발사로 3년 동안 사우디 건설현장에서 근무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발 기술을 인정받았던 그는 서울, 부산지역에서 인기 있는 이발사로 활동했다.

그는 “60-70년대의 서울이나 부산에서 이발할 때는 손님이 많아 허리 한번 펴 보지 못한 날이 많다”고 말했다.

그에게 고정 손님은 없다. 다만 요즘은 이발소를 찾기 힘든 상황이라 이발소만을 고집하는 손님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정도다.

하루 평균 손님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그는 “요즘 미용실을 찾는 사람이 많아서 한 달 동안 이발소에서 손님 한명 없던 때도 있었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의 가게를 알고 찾는 단골들은 꼭 수양이발관만 찾는다. 가게를 찾는 사람 중 나이가 최고 어린 사람이 50대란다. 요즘 시내엔 세련된 미용실이 수두룩하지만 노인들에게는 옛날 이발관이 더 편하기도 하고 옛 향수 때문에 찾는 손님들도 더러 있다.

그는 이발보다는 농사일을 할 때가 많다. 이발 손님이 많이 줄어서 농사를 짓고 있지만 이발을 원하는 손님이 있으면 출장이발도 주저하지 않는다. 가위와 빗 그리고 거울만 있다면 어디라도 이발소가 된다.

그는 손님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매일 6시면 어김없이 이발소 문을 열고 청소를 하면서 일과를 시작한다. 청소는 그가 일과를 시작하기 전 꼭 해야 하는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발소의 생명은 청결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는 “이발사가 흰 가운은 입는 이유는 청결도 청결이지만 이발사의 자부심이다”며 “수술에 임하는 의사나 면도칼을 쥔 이발사나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것은 똑같다”고 말했다.

이발을 마치고서 낡은 세면대에 머리를 감으러 갔다. 샴푸는 없고 하얀 비누만 있다. 드라이로 마무리 하고나니 말끔한 신사가 된다.

시간이 갈수록 이발소를 찾는 사람이 줄고 있지만 행여라도 이곳을 찾을 손님이 있을까봐 언제나 문을 열어두고 있는 이곳 수양이발소. 김홍오 사장의 따뜻한 마음이 봄바람을 타고 전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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